이지선
시인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 한다. 어느 꽃이라도 꽃은 아름답다. 꽃만 아름다운 나무도 있고, 꽃은 보잘것 없지만 열매가 튼실한 나무도 있다. 열매가 모두 인체에 유익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과꽃은 사과가 열리고, 벚꽃은 버찌가 열린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결과는 천지 차이다.
이번 6·3 선거에 어떤 열매가 열리는지 그 열매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지켜볼 일이다.
3선에 도전한 임병택 시장이 도전자가 없어 무투표로 당선된 것을 축하해야 하는지 어정쩡하다. 3번이나 입후보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후보를 내지 못한 야당의 입장도 답답하겠지만 시민의 입장도 허전한 느낌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이 대화를 조율하고 의견을 나누고 타협하면서 어떤 방향이 국민과 시민을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를 결론을 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런 상황은 정치든, 경제든, 사회안전망이든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지방선거 때마다 불필요한 제도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의원과 시장. 도의원과 도지사. 지자체장에는 과연 정당이 필요한가? 정당이 있으므로 오히려 지방자치에 역효과가 나지 않는가 생각된다.
여당과 야당 입장에서 서로 편 가르기 싸움 하느라 정작 지자체 행정을 마비시키는 일도 있다. 앞으로 지역이 발전하려면 정당을 없애고 능력 있는 인물을 뽑아 지방자치답게 지역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몇 번인가 이런 폐단을 없앤다고 선거공약도 했던데 당선이 되고 나니 슬그머니 무효 되었다. 정당의 힘을 잃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정당은 정당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 제도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국민들이 잘살기 위해 필요한 제도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껍데기에 치중하다 보니 거대한 공룡이 되어간다.
시의원을 뽑는데, 가까이 있는 지역끼리 한 구역이 된 게 아니고 대야동은 전혀 거리에 상관없이 목감동과 매화동에 묶여있다.
주민의 의견과 상관없이 선거구를 가위질한 목적이 자기 당 출신 시의원을 더 유리하게 하려는 꼼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결과에 따라 4년간 지역의 살림과 운영을 맡을 당선자들은 당선의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은 일꾼을 자처한 지역장들을 감시 감독할 의무가 있다. 당선자와 악수하고 눈도장을 찍는 일에 서둘지 말고, 그들에게 세금을 쓸 수 있는 살림을 맡겼으니 눈뜨고 언행을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