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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 바다는 낮은 곳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기사입력 2026-07-08 23:10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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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 
 (사)한국문인협회
별다방한국문학연구소 대표


  산은 높이를 자랑하지만 강은 자랑하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면서도 들판을 적시고 생명을 키우지 않는가. 
수많은 강물이 결국 바다를 찾아가는 이유도 바다가 가장 낮은 자리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낮아진다는 것은 뒤로 물러서는 일이 결코 아니며 자신을 비우고 더 많은 것을 품는 일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의 높이를 증명하려 애쓰느라 상대방에게 함부로 대하며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진짜 성숙한 사람은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귀를 열고, 큰 사람일수록 먼저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춰준다. 결국 그 같은 겸손이 자신을 작게 만드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크게 만드는 품격이고 곧 자신의 품위가 됨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한 장면이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뒤따랐다. 누군가는 파격이라 했고, 누군가는 지나친 몸짓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그 장면은 권력이 자신의 높이를 내려놓고 상대를 존중하는 한 모습으로 읽을 수 있겠다.
  권력은 사람을 쉽게 높은 곳에 세우지 않나. 직책은 높아지고 의전은 늘어나며 주변은 박수와 환호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사실 그럴수록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은 쉬워지고, 사람의 눈높이에 서는 일은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권력의 크기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태도를 더 오래 기억해 왔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역사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시민들과 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히던 임병택 시흥시장의 모습이다. 그 짧은 순간의 몸짓은 단순한 배려를 넘어 시민을 바라보는 철학이라 말하고 싶다. 시민을 내려다보는 행정이 아니라, 시민과 같은 높이에서 함께 서려는 자세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거대한 구호로만 완성되는가. 아니다. 시민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화려한 연설보다 이처럼 작은 순간들이 아니겠는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 약속의 자리를 찾아가고, 어려운 이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는 모습,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장면,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추는 자세가 정책보다 더 깊은 신뢰를 만들지 않을까.
  시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다. 그러니 민주주의가 다르겠는가. 존엄한 존재이며 공동체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권력가의 태도가 곧 민주주의의 시작일 것이다. 몸을 낮춘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의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높아지는 법에는 익숙하지만, 낮아지는 법에는 여전히 많이 서툴다. 더 크게 말하는 사람이 강해 보인다고 착각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이 성공한 사람처럼 여기려 한다. 그러나 자연은 언제나 다른 답을 보여주고 있음이다.
  유수한 시간을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들을 새겨보면 좋겠다. 꽃은 향기를 자랑하지 않아도 계절을 기억하게 하고, 나무는 자신의 키를 말하지 않아도 그늘로 그 존재를 증명한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모습도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라고 했다. 정치도, 행정도, 우리의 삶도 결국 이러한 이치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관리자 (sjn4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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