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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 잃어버린 갯골 습지 (9)

기사입력 2026-08-19 22:58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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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잃어버린 갯골 습지 (8) ☜

  환경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개발되고 개선한다. 그 과정에서 변형되고 사라지며,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거나 자리 잡게 된다. 고대로부터 포동과 매화동, 하중동, 장곡동 안에 내륙 갯골이 형성되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개간한 것은 조선 20대 임금 경종인 데, 1721년 포동 걸뚝과 하중동 돌장고개를 잇는 방죽을 만들어서 매화동 방향의 땅을 개간하여 호조벌을 만들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인 1937년에 만든 포동염전이 내륙 갯골을 대대적으로 개발했다. 염전을 조성한 것은 갯골 전체에 변화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갯벌은 사라지고 수로와 그 주변의 갯벌이 조금 남겨진 정도였다. 해방 이후 6.25사변을 거치면서 인구의 급증과 식량난이 겹치면서 1960년대 나머지 갯벌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이때 조성된 논들이 하중동과 장현동 앞에 남아있는 것들이다.
  일제는 염전을 조성하면서 내륙 깊은 곳에 염전에 필요한 바닷물을 담아놓기 위한 저수지를 만들었다. 이때 포동 새우개와 신촌 사이에 3개의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 가장 작은 것이 포리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었다. 지금은 그 저수지가 사라졌다. 시대의 변화와 또 다른 필요에 따라서 저수지는 매립되었고, 지금은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대지가 되었다. 
  이 작은 저수지는 1960년 포리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저수지는 작고 수심도 얕았다. 저수지 안에도 물길은 상대적으로 깊었고, 물길은 수문으로 이어졌다. 물길을 따라서는 초가을부터 망둥어 낚시를 했다. 망둥어는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매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잡아내도 여전히 많이 잡혔던 어종이다. 별 맛은 없지만 단백질이 절대 부족했던 시대에 서민들에게는 귀한 식품이 되어주었다.
  저수지는 작은 공간이지만 아이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신발을 벗고 빈 도시락을 들고 저수지에 들어갔다.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서 저수지 바닥에서 가무락(모시조개)을 잡았다. 많은 아이들이 들어가서 저수지 바닥을 밟고 다니다 발에 밟히는 것을 잡아내는 방식으로 손과 발이 빠른 아이들은 빈 도시락에 한 가득 잡곤 했다. 이를 본 선생님들은 학생들 안전사고가 걱정이 됨으로 저수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누구랄 것도 없이 점심시간이면 저마다 들어가서 조개를 잡았다.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저수지에 뛰어드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생존본능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누가 시킨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저수지에 들어가는 것을 위험하게 생각하여 금지시키고 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점심시간이면 저수지에 발을 담고 있었다.
  먹을 것이 절대 부족했던 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현재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혹여, 그 저수지가 지금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조개를 잡겠다고 할까? 갯벌체험을 간다고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야 말로 온갖 장비와 치장은 어부보다도 과하게 채비를 했지만 정작 현장에 가면 어부들이 준비해놓은 것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나와서 준비해놓은 요리를 맛보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1960년대 초등학생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저수지에 들어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았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내륙 깊숙한 곳에 조성된 작은 갯물 저수지에 많은 조개들이 서식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양성은 떨어지지만 그곳에는 고둥이나 민챙이류가 많았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갑각류인 갯가재나 새우들도 서식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바닷물이고, 바닥은 갯벌이니 갯것들이 서식할 수 있었다. 
  학교 앞에 있던 작은 저수지, 그곳은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던 곳이다. 또한 겨울이면 놀이터이기도 했다. 작은 공간이다 보니 늦가을 소금생산이 끝나면 저수지에는 새로운 바닷물을 담지 않는다. 오히려 적당 수준의 물을 빼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비가 내리니 남아있는 물도 염도가 낮아졌다. 겨울이면 그 물이 언다. 그런데 담수인 논에 어는 얼음과 여기 저수지에 어는 얼음은 질이 달랐다. 논의 얼음은 굳은 반면 이곳 저수지 얼음은 염분이 있어서 굳지 않다. 얼음은 얼지만 물렁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은 그러한 얼음판은 ‘고무다리’라고 불렀다. 여럿이 어깨동무를 하고 저수지에 들어가면 얼음판이 가라앉는다. 일렬로 빠르게 걷노라면 얼음이 꺼질 듯 내려앉는 것을 피해 앞으로 내달리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가 얼음이 꺼지는 속도와 속도가 맞지 않으면 모두 물에 빠지기도 했다. 위험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야단을 치지만 겨울날 특별한 노리개가 없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단이 따로 없으니, 저수지 얼음판에서 ‘고무다리놀이’ 나름 최고의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저수지는 먹을거리를 내주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더 이상 소금을 생산하지 않게 되었으니 염전도 저수지도 사라지고 말았다. 포리초등학교 앞에 있던 작은 저수지는 나대지가 되고 말았는데, 또 어떤 용도로 탈바꿈하게 될지...

관리자 (sjn4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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