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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칼럼] 개헌 앞에 선 보통사람의 태도

- 헌법을 바꾸는 날,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

기사입력 2026-08-20 21:17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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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
(사)한국문인협회
별다방한국문학연구소 대표


- 헌법을 바꾸는 날,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


  개헌이라는 말이 우리 앞에 놓였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지난 제헌절 경축사에서 2027년에 ‘국민주권 개헌안’을 마련하고 제22대 국회 임기 안에 제10차 개헌을 매듭짓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후 권력구조 개편과 대통령 연임에 관한 질문에서 “주권자인 국민 여론과 국민 선택의 문제”라고 답하면서 정치권에 논란이 일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국민 선택’이라는 말을 마음에 담아본다. 개헌을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생각한 뒤 선택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개헌에 대한 찬반만의 문제인가.
  헌법은 보통사람에게 그리 가까운 말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떠 일터로 가고, 장을 보고, 아이를 키우며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헌법을 떠올릴 일은 거의 없다. 때문에, 대통령제가 어떻고 권력구조가 어떻다는 말이 나오면 정치인이나 법률가들이 알아서 할 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통령에게 얼마만큼의 권한을 맡길 것인지, 국회는 그 힘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 중앙과 지방은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국가는 한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를 정해 놓은 것이 헌법이다. 어렵게 말하면 국가의 기본 질서이지만, 조금 쉽게 말하면 우리가 권력을 맡기면서 함께 정해 놓은 하나의 약속이 헌법인 것이다.
  따라서, 개헌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보다 제도를 먼저 보는 것은 마땅하다 여겨진다. 연임제를 이야기한다고 현직 대통령부터 떠올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방분권을 말한다면, 내가 사는 도시가 무엇을 더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기본권을 고친다면 지금의 헌법이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시대까지 충분히 품을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떠나고 국회의원도 바뀌며 정당의 권력도 옮겨간다. 그러나 그들이 떠난 자리에도 헌법은 남아 있다. 개헌을 오늘의 정치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이다. 또한,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국민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과연 충분한가.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물음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19년에 출범했다가 1933년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된 뒤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막을 내렸던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에도 헌법이 있었고 의회와 선거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민주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었지만, 경제적 절망과 사회적 불안, 정치적 극단화가 겹치면서 민주주의를 떠받치던 토대가 조금씩 허물어졌던것이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도 국민이 어느 날 한 번의 투표를 잘못해서 일어난 단순한 사건은 아니었다. 선거와 정치권의 판단, 대통령의 총리 임명, 기본권 억압과 수권법이 이어지면서 민주적 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독재를 막지 못했다. 그 시대의 독일을 오늘의 대한민국에 겹쳐 놓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오래된 역사가 건네는 한 가지 교훈은 새겨볼 만하지 않을까. 투표가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제대로 판단하려면 충분히 알아야 한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말에도 귀를 열어야 하고, 권력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납득하기 어려울 때는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선택할 권리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에 이르는 과정까지 건강할 때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춤이다.
  개헌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치권이 의제를 정하고 전문가들이 조문을 만든 뒤 완성된 개헌안을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다. 우리는 그때 찬성과 반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분명 국민에게 주어진 중요한 권한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집을 새로 짓는다고 해보자. 이미 완성된 설계도 두 장을 주인에게 보여주며 하나를 고르라고 하는 것과 처음부터 “어떤 집에서 살고 싶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다르다. 헌법도 그렇다.
  대통령에게 어떤 권한을 맡길 것인지, 국회는 그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 지방에는 어느 정도의 결정권을 줄 것인지, 달라진 시대에 새롭게 지켜야 할 권리는 없는지 논의하는 자리에도 시민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참여했다는 모양새가 아니다. 국민이 낸 의견이 어디로 갔는지, 무엇이 받아들여졌으며, 받아들여지지 않은 의견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 선택’이라는 말에도 무게가 실린다.
  우리 모두가 헌법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어려운 조문을 줄줄 외워야 주권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몇 가지를 묻는 데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왜 지금 바꾸려 하는가. 바뀌면 내 삶은 무엇이 달라지는가. 새롭게 커지는 권력이 있다면 누가 그 힘을 견제하는가. 그리고 조금 더 오래 품어야 할 물음이 하나 더 있다면 ‘나는 어떤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은가.’ 이다.
  어쩌면 국민주권은 이런 평범한 물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선거 날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시민의 몫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을 맡긴 뒤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는 일, 모르는 것은 알아보는 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뒤 자신의 판단을 세우는 일도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방법이다.
  개헌은 자주 찾아오는 선택이 아니다. 그런 만큼 너무 서둘러 편부터 가르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주장한다고 먼저 찬성할 필요도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정당이 말한다고 내용을 살피기도 전에 돌아설 이유도 없다. 한 번 더 들여다보고 다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 뒤, 이 선택이 오늘의 정치가 아니라 앞으로 이 나라에서 살아갈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지 생각해 보면 된다.
  헌법 제1조에는 이미 국민이 이 나라의 주권자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이 우리를 저절로 주권자로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알아보려는 마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여유, 권력 앞에서 “왜 그렇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는 용기. 주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지식보다 이러한 ‘작지만 단단한 태도’는 아닐까.
  우리는 지금 개헌 앞에 서 있다.

관리자 (sjn44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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